내 일은 내가 가장 잘 알아. 자신에 대한 것이니, 그리고 누구도 자신보다 더 자신에게 가까울 수 없으니 이러한 말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다. 나 자신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따라서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잘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한을 둬야한다. 나는 나 자신을, 아무리 많이 쳐줘도 절반 정도만 잘 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항상 수수께끼 같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수수께끼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단 나 자신을 최대한 알아봤자 반절 밖에 알 수 없다는 바로 이러한 상태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정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우리가 과연 육안으로 우리의 전신을 살펴볼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의 몸 전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리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가령 거울, 제3자의 눈과 같은 것들. 혹여 굉장한 유연성을 자랑하며 전신을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도 스스로 자신의 몸의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의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의료기기의 도움, 의료관계자의 전문지식, 그리고 그러한 일을 행하기 위한 기술을 체득한 사람 등. 그러한 제3의 것들이 필요하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친숙해서 종종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일상용어로 사용해버리고 마는 프로이트의 용어들(무의식, 리비도, 초자아 등)을 통해서 정신적인 측면 역시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는 온전히 파헤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물질적인 영역이든, 정신적인 영역이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만의 힘으로는 모두 파악할 수 없다. 만일 자신에 대해서 모두 알고자 한다면, 물론 아마 이러한 기획은 실패하겠지만, 최소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타자를 우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오직 제3의 것들, 타자의 시선만이 나 자신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나의 영역을 응시하고, 포착한다. 따라서 타자는 최대한으로 말하자면, 나만큼이나 나를 잘 아는 존재이다. 남은 문제는 타자 안에서 내가 모르는 영역이 어떻게 해석되고 바뀌어가는지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취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은 오로지 그러한 것들 뿐이라는 점이다(이것이 내가 자신을 모두 알고자 하는 노력이 실패할 기획이라고 부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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